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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연세의료원의 탄생
  • <1962년 연세의료원의 탄생>
    연세는 한국 근대화의 역사, 한국 기독교의 역사와 함께 하였습니다. 구한말 서양의 기독교 선교사들은 전도사업의 일환으로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주도하였고, 새로운 근대 서양문명을 전하였습니다. 이들이 일군 연세는 한국 근대화의 기지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1885년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광혜원)은 한국 서양 의학의 발상지로서 한국에서 활동하던 주요 교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로 발전함으로써 명실공히 개신교 의료선교의 중심적인 기관이 되었습니다. 1915년 여러 교파의 연합대학으로 출발한 연희전문학교는 명실공히 개신교 고등교육 선교에서 중심적인 기관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개신교 여러 교파의 해외선교본부는 처음부터 세브란스와 연희가 하나의 종합대학으로 발전할 것을 목표로 하였고, 그러한 꿈은 해방을 맞아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의 합동, 곧 연세대학교의 탄생으로 실현되었습니다. 제중원(광혜원)이 개원한 지 62년, 연희전문학교가 개교한 지 42년만인 1957년 1월 5일의 일이었습니다.
    합동의 실현에 앞서 이미 1948년 두 학교의 교수회는 이러한 합동에 뜻을 모아 12월 “합동 건의서”를 발표하였으며, 1949년 5월에는 연희대학교에 세브란스의과대학 예과 2년 과정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 건의서
    건의서

    “한 가지로 한 목표와 정신을 주초柱礎 삼아 세워진 세브란스와 연희 학원은 수십 성상星霜 가진 풍상風霜을 겪어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음에 감회도 자별自別함을 금치 못하오나, 이 사이에 북돋우어진 양 학원의 알뜰한 의誼와 살뜰한 정情은 호상互相 간난艱難을 도와 이따 학원 피차에도 보기 드문 아름다움이었음은 온 누리가 그리고 기뻐하는 바이외다.
    오늘날 이모로나 저모로나 새나라 자리 잡기에 진통이 지나치게 심한 마당에 다달아, 오히려 진정 단일기관으로 엉켜져 우리나라 새 교육의 선구자이던 영예와 긍지와 책임을 더 한층 세차고 굳건하게 이룩하였으면 하는 것이 중망衆望인 것도 같사외다.
    더구나 바야흐로 건국 교육의 방책이 마련되고 새로운 최고 학부의 면모가 논의되어, 사립 종합대학으로서의 응당 차지할 소임所任이 큼을 살필 때, 우리 양 대학 교수 회원 일동은 누월累月 신중히 생각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제야말로 양 대학 합동合同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바라 하와 감히 양 대학 이사회에 이를 건의하오니 조양照諒하소서.”

    단기 4281(1948)년 12월 18일
    세브란스의과대학 교수회 대표, 연희대학교 교수회 대표
  • 세브란스 의과대학 이사회 의사록
    세브란스는 양교 합동의 첫 단계로 의예과 교육을 연희대학교에서 시행하기로 하였다.
    「세브란스의과대학 이사회 의사록」, 1949.5.7
     
  • 세브란스 의과대학 이사회 의사록
    연희는 양교의 합동과 의예과 교육 수용을 위해 생물학과를 신설하기로 하였다.
    「연희대학교 이사회 의사록」, 1949.5.12
     
  • 그러나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 연희와 세브란스는 부산으로 피난하였고, 전란 속에 두 대학의 건물 파괴와 각종 피해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1953년이 전세가 어느 정도 안정되기에 이르러서 두 대학의 합동 논의가 다시 시작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6.25 한국전쟁 중의 연희대학교 부산 임시교사
    6.25 한국전쟁 중의 연희대학교 부산 임시교사
    6.25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세브란스병원 (동은의학박물관 제공)
    6.25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세브란스병원(동은의학박물관 제공)
  • 전후 복구 사업에 정신이 없던 양교의 합동 추진에 큰 전기를 마련한 것은 미 제8군 기념 흉곽병원 건립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병원은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미군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서울역 앞 원래의 세브란스병원 부지보다 더 넓은 부지가 필요하였습니다. 결국 1955년 1월 22일 연희 이사회는 합동을 전제로 미 제8군 기념 흉곽병원을 신촌의 연희 교내에 신축하는 것을 수락하였고, 4월 23일 흉곽병원의 역사적인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 미 8군 기념 흉곽병원 건립 협약
    미 제8군 기념 흉곽병원 건립 협약, 1955
    미8 군 기념 흉곽병원 착공
    미 제8군 기념 흉곽병원 착공, 1955
    미 8군 기념 흉곽병원 착공
    미 제8군 기념 흉곽병원 착공, 1955
  • 세브란스의과대학 부속병원 신축공사에 관한 건

    세브란스의과대학 김명선 학장이 연희대학교 백낙준 이사장에게 병원 신축 공사의 협조를 요청한 공문

    「세브란스의과대학 부속병원 신축공사에 관한 건」, 1954.11.18

    간호학교 건축 기타시설 부지대여에 관한 건

    세브란스의과대학 김명선 학장이 연희대학교 백낙준 총장에게 간호학교 등의 신축 부지를 요청한 공문

    「간호학교 건축 기타시설 부지대여에 관한 건」, 1955.12.27

  • 그 사이 1956년까지 양교 합동이사회는 새 대학교의 정관에 대해 합의를 얻어 드디어 1957년 당시 문교부로부터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의과대학의 합동을 인가받았습니다.
  • 연희대 세의대 역사적인 병합 실현
    「연희대 세의대 역사적인 병합 실현」, 『연희춘추』 제93호, 1957.1.15
    연희대학교의 명칭을 연세대학교로 변경 인가
    연희대학교의 명칭을 연세대학교로 변경 인가, 1957.1.5
  • 세브란스의 설립자를 재단법인 연세대학교로 변경 인가
    세브란스의 설립자를 재단법인 연세대학교로 변경 인가, 1957.3.11
    양교 합동에 따른 연세대학교 학칙 변경 인가
    양교 합동에 따른 연세대학교 학칙 변경 인가, 1957.3.12
  • 이어 미 제8군 기념 흉곽병원을 시작으로 소아마비 재활원, 간호원 기숙사, 의과대학 교사 등이 차례로 건축되어, 학교와 병원 전체가 신촌으로 이전을 마치자, 착공한 지 7년 만인 1962년 동양 최대 규모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세브란스병원과 미 제8군 기념 흉곽병원의 봉헌식이 거행되어, 마침내 “연세메디컬센터”(연세의료원)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 신촌캠퍼스에 조성 중인 세브란스병원
    신촌캠퍼스에 조성 중인 세브란스병원, 1950년대 말
    세브란스병원 기초공사
    세브란스병원 기초공사, 1955
  • 세브란스병원 건립 공사
    세브란스병원 건립 공사, 1960
    완공된 세브란스병원
    완공된 세브란스병원, 1962
  • 총 공사비 277만 9천 불과 환화 7억 3천만 환의 거액을 들여 7년 만에 준공을 보게 된 연세의료원의 봉헌식이 1962년 6월 5일(화) 오후 2시 거행되었습니다. 당시 봉헌식의 모습은 『연세춘추』에 상세하게 보도되었는데, 기자는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우리 한국의 형제들을 치유하며 마음이 상한 이들의 영혼을 구원해 줄 인술과 진리의 전당이 연세 숲에 세워진 것이다. 이로써 연세 숲에는 한국의 지성을 이어가는 학문의 전당과 함께 병든 육신을 치료하는 동정과 사랑과 봉사의 집이 나란히 자리 잡게 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 슬픔 있는 자 다 이리 오라 - 연세의료원 하나님 앞에 봉헌
    「슬픔 있는 자 다 이리 오라 - 연세의료원 하나님 앞에 봉헌」, 『연세춘추』 제292호, 1962.6.11
  • 또한, 가이 S. 멜로이 미 제8군 사령관은 기념사를 통해, “한국에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쓰러진 미국의 젊은 청년들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미 제8군 흉곽병원을 준공하게 된 것이며, 지금까지의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미 제8군의 최선을 다해 오늘의 보람 있는 봉헌식을 보게 되었다.”고 축하하였습니다.
  • 연세의료원 봉헌식
    연세의료원 봉헌식, 1962.6.5
    연세의료원 봉헌식
    연세의료원 봉헌식, 1962.6.5
  • 봉헌식의 개회 선언에서 윤인구 총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의료원을, 서울 시민 나아가서는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의지할 곳 없는 형제의 고통을 구제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자선의 처소로, 그들의 생을 희생과 봉사로써 치료하는 일에 바치고자 하는 의사와 간호원의 훈련도장으로, 병고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의 연구소로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 봉헌 예배 순서」, 1962.6.5.)

    1990년에 채택되어 오늘날 연세의료원의 사명문에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류를 질병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과도 같은 뜻을 천명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특히, 봉헌식장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부른 찬송 “위로하심” (합동찬송가 제231장)의 말씀도 그 의미를 더해주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위로하심

    슬픈 맘 있는 자 어디 있든지
    불쌍히 여기는 주 앞에서
    병들고 설은 정 밝게 고하게
    위로할 권능 다 주께 있네

    고독한 자에게 즐거움 되고
    길 잃은 자에게 빛이 되며
    회개한 자에게 바람이 되고
    위로할 권능 다 주께 있네

    영생의 양식을 베푸셨으니
    주리는 자들아 참예하게
    거룩한 잔치에 희박한 생각
    위로할 권 능 다 주께 있네

    아~멘
  • 참고로, 연세의료원의 개원에 담은 연세인들의 뜻을 보다 깊게 새기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인 광혜원의 창립을 이끈 알렌의 「병원설립안」과 남대문 「세브란스기념병원 정초식 기념사」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본인은 미국 시민으로서 조선인을 위하여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자 합니다. 만약 조선 정부가 본인에게 병원 설비를 갖추어준다면, 서양 의술로써 환자들을 치료하고 부상 병정들에게 요양처를 제공함으로써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병원시설을 갖추게 된다면 이는 장차 조선 청년들에게 서양의학 및 공중위생학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될 것입니다.” (「병원설립안」, 1885)

    “저는 세브란스병원이 서양의 젊은 나라와 극동의 오래된 나라 사이의 우의의 정신을 나타내는 징표로 우뚝 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병원이 한 걸음의 진보를 나타내고, 또한 우리보다 불행한 이웃들이 갖는 고통과 곤궁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우리들 각자에게 부여된 의무를 상기시키는 표상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세브란스기념병원 정초식 기념사」, 1902)